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데리케 루이제 (문단 편집) === 왕비 === 1947년 4월 1일, 시숙 [[요르요스 2세]]가 자녀 없이 사망함으로써 [[파블로스]]와 프레데리키는 각각 그리스 왕국의 왕과 왕비가 되었다. 프레데리키는 독일 혈통이라는 점 때문에 항상 비판을 받아야 했다. 그리스의 좌파 정치인들은 프레데리키의 외할아버지가 [[빌헬름 2세]]이며, 그녀의 오빠와 남동생들도 나치 친위대의 일원이라고 비판했다.[* 큰오빠 [[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]]는 아예 '''[[슈츠슈타펠]]'''에까지 가입한 극렬 나치 지지자였고 아버지 [[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|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]]는 직접적으로 나치에 가담하진 않았지만 후원금을 보내며 나치의 주요인사들과 친하게 지냈다. 외가인 [[호엔촐레른 가문|독일 황실]]쪽으로 가면 외삼촌들도 대부분 나치에 호의적이였고 그중에서 특히 넷째 외삼촌 [[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프로이센|아우구스트 빌헬름]]은 [[SA|돌격대]]에까지 가입한 [[아돌프 히틀러|히틀러]]의 열렬 추종자였다. 그나마 외할아버지 [[빌헬름 2세]]가 점차 나치를 불신하였고 아우구스트 빌헬름도 외인 취급했다. 이렇듯 친가와 외가 할 것 없이 일가친척들이 죄다 나치 지지자였으니 반발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였다.] [[파블로스]]의 사촌인 [[필립 마운트배튼]]과 [[엘리자베스 2세|엘리자베스 공주]]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에는 [[윈스턴 처칠]]이 대놓고 [[빌헬름 2세]]의 외손녀라고 말하고 다녔을 정도. 이에 대해 프레데리키는 "나는 빌헬름 2세의 외손녀이긴 하지만 [[빅토리아 여왕]]의 후손이기도 하며[* 빌헬름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자이다.], 만약 [[살리카법]]이 적용되었다면 내 아버지가 영국의 왕이 되었을 것이다.[* 만약 영국에 [[살리카법]]이 적용되었다면 빅토리아 여왕은 여자이기 때문에 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고 [[조지 3세]]의 5남인 하노버 국왕 [[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]]가 영국의 왕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.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의 직계 증손자가 프레데리키의 아버지 [[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|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]]다.]"라며 강하게 맞대응 했다고 한다. 이후 그리스의 공산주의자들은 [[그리스 내전]]을 일으켰는데 그 동안 프레데리키 왕비는 아이들을 위한 53개의 구호소를 만들기도 했다. 하지만 프레데리키 왕비의 정치 개입은 국내와 외국을 통틀어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